자유로운 영혼

송악산(松岳山)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오름이다.

산방산과 이웃해 있으며 이중 분화구로 이루어져 있다

수중화산체(水中火山體)로 최대 높이 81미터 지름 800여 미터의 응회환이 외곽을 형성하고

그 내부에 다시 화산활동에 의해 높이 104 미터 깊이 69 미터의 분석구가 형성된 이중화산이다.

형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느나 분석구의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수만년 이내의 젊은 화산으로 추정된다.

송악산을 이루는 주요 암석응회암, 현무암 등이며 응회암에 찍힌 새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송악산의 해안 절벽에 군사용 굴을 뚫어 기지화 하였다.

 일본군은 송악산 주변에 알뜨르 비행장을 만들어 가미카제 전투기의 출격과 같은 용도로 전쟁에 이용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경의 예비 검속에 의해 상모리 주민 132명이 송악산과 이어진 섯알오름에서 학살되었다.

 당국은 학살 현장에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고 은폐하였으나 1957년 우연히 유해가 드러나 발굴되었다.

 유해가 뒤엉켜 있어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유해를 한데 모아 다시 132개의 작은 봉분을 만들고 백조일손지지를 조성하였다.

 

 

송악산에 오르면 산방산,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송악산 주변의 해역은 감성돔, 뱅에돔, 다금바리 등의 낚시터로 유명하다.

 

 

 

바닷가 절벽에는 일제 때 파놓은 일본진지 동굴이 아직도 남아있어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탄약고가 있었던 송악산 알오름인 섯알오름은 6·25 후 예비검속된 한림,

대정 지역의 주민 200여 명을 대정읍 곡마창고에서 이송시켜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통한의 학살터이기도 하다.

 이들 주민들은 무고한 양민과 보도연맹원, 4ㆍ3 당시 체포됐다가 석방된 사람들로 정부는 6·25후 예비검속이란

이름으로 이들 주민을 대량으로 학살했다.

그때 학살된 주검은 6년 후에야 겨우 유족들에 의해 수습됐는데 그 때 수습된 132구의 유구들은 누가 누구인지 몰라 유족들은 '조상은 일백이요,

자손은 하나'라는 뜻의 백조일손(百祖一孫) 묘역을 조성했다. 백조일손지지에서는 매년 위령제가 열리기도 한다.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한라산도....

어제 우리가 갔을대는 화창했는데 오늘은

흐리고 간간히 눈도 온다는데..

구름이 머물고 있는게 보인다.

형제섬까지~~

 

 

 

 

오른쪽길로 올라가면 바로 정상으로 갈수있는데.

우리는 왼쪽 전망대까지 돌아 엄청 먼길을 걸었다.

하지만 힘든만큼 멋진 길을 걸었다는거..

 

 

잠수함 여행을 여기서 하는것같다.

 

 

 

서서히 잠수하더니 보이지않는다.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다나...

산방산과 한라산 형제섬을 같이..

 

 

지나온길이 아름답다.

 

 

 

 

 

 

 

 

 

너무 먼길을 돌아 피곤하다.

날씨도 흐리고....

두꺼비 같이 생긴 바위

 

멀리 정상이 보이는데

갈길은 까마득하고....

 

 

저기 누가 이쪽으로 내려오는게 보인다.

우리도 살짝 샛길로....

 

 

 

 

드뎌 정상인 분화구에 도착...

 

 

산방산은 어디를 가도 보입니다.

 

 

 

 

 

 

저 아스팔트길을 걸어가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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