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성읍마을은 조선조 태종 10년(1410년)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되었던

읍치(고을 수령이 사무를 관장하던 관아가 있던 장소)가 조선조 세종 5년(1423년)

이곳으로 옮겨진 이래 500여 년간 정의현의 중심이 되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래 정의현은 태종 16년(1416년) 안무사 오식의 건의에 따라 

성산읍 고성리에 정의성을 축성 하였었으나, 

읍치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행정상 불편할 뿐만 아니라 태풍의 피해가 잦고 또한 우도가 가까이 있어 

외적으로 부터의 침입이 빈번하였으므로 안무사 전관이 건의하여 세종 5년(1423년), 

당시 진사리(현 표선면 성읍리)로 현치(현의 읍치)를 옮기게 되었다 한다.

 



따라서 일명 진사성이라고도 불리었던 정의성은 축성을 시작한지 

5일 만인 세종 5년 정월 13일에 총 둘레 2,986척, 높이 13척의 규모로 완공되었는데 

성에는 동서남으로 세 개의 문을 두었고 성안에는 두 곳의 우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