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앙코르 톰(Angkor Thom )'

남쪽 방향의 맨 아랫쪽에 '앙코르 와트(Angkor Wat)'가 자리하고 있고...

'앙코르 톰' 남문으로 가는 좌측에 '프놈바켕(PhnomBakheng)' 있습니다.

'앙코르 톰' 중앙 '바이욘(Bayon)사원'이 자리하고...

그 뒤 북쪽방향의 좌측에 '바푸온(Baphuon)사원', '피미아나카스(Phimeanakas)'가 이어져 있으며...'

바이욘사원'과 북문 사이에 '코끼리테라스''레퍼왕테라스'가 자리하고 있다.

 

모두 다섯개의 출입문이 있는데....유독 東쪽에만 두개의 문이 있으며...

.그 중 하나가 왕과 왕족들이 출입하던 문이였다고 합니다.

'앙코르 톰'은 12세기 자야 바르만 7세가 건립한

앙코르 왕국의 마지막 수도로

당시 인구가 70만명(1117년)으로 추정되는

12세기 당시의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고 합니다.

13세기 유럽의 인구가 프랑스 파리가 10만명, 영국 런던이 7만명, 중국 송나라 수도가 80만명 정도였다는데

'앙코르 톰'은 이미 12세기에 70만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문명 도시 중 하나였음이 분명합니다.

그후 역사적인 쇠퇴와 '킬링필드'로 알려진 크메르루지 '폴포트' 정권 시절의 무지한

 양민 학살의 후유증 탓에 현재의 씨엠립 인구는 17만명 정도랍니다.

 

 

 

 

 

 

 

 

 

 

 

 

남문바로앞 해자를 건너는 다리에는 54명의 신과 악마가 좌우

나란히 줄을서서 7개의 머리를 가진 뱀을 붙잡고있는 난간이 유명합니다.

툭툭이 빨리달려 좌우 다찍을수가 멊습니다.

 

남문입니다.

 

 

 

 

 

'앙코르 톰'의 면적은 145.8 헥타르로 한변의 길이가 3km인 정 사각형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내부는 정확하게 4등분하여 그 중앙에 '바이욘 사원'을 앉혔다고 합니다

 

크메르 왕국의 마지막 도읍지로서... 600년 왕조의 위대한 역사를 간직한 '앙코르 톰'의 중앙에 자리잡은 '바이욘 사원'

그 때의 찬란했던 크메르제국의 위용을 역사 속에서 더듬어 보면

1296년 부터 2년간 '앙코르 톰'에 거주했던 遠나라 사신 '주달관'의  문자 기록을 보면

왕궁의 중앙에는 황금탑(바이욘 지칭)이 하늘을 찌르며 서 있고

그 옆에는 20여개의 탑과 수백개의 돌로 된 방들이 에워 싸고 있다.

황금탑 북쪽에는 청동으로 된 탑(바푸온을 지칭)이 솟구쳐 있고 그 북쪽에는 황금탑보다

 더 높을지도 모르는 황금탑(피미아나가스를 지칭)이 역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데

이 탑에서 북쪽으로 400미터 떨어진 곳에 王의 거처가 있으며 왕궁 위쪽에는 또 다른 황금탑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다

라고 쓰여 있다고 합니다

바이욘 사원 입구의 와불상.

대승불교를 꽃피웠다는걸 느낄수있다.

 

 

크메르는 1177년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 온  '참파(베트남係)'에게 수도를 빼앗기고  트리부바나디티아왕은 살해 당하고 도시는 폐허가 되어 버렸는데

1181년 '자야바르만 7세' 소수의 병사만으로 '톤레삽 해전'에서 '참파왕'을 죽이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수도를 회복하고 왕위에 오른 뒤 '바이욘 사원'을 대대적으로 증축하고

그 회랑에 '톤레삽 해전'등 역사와 민족의 생활상들을 浮彫로 그려 놓았다고 합니다.

 

 

 

'바이욘 사원'에 있는 '4면 조각상'...'자야바르만 7세' 시절의 특징적인 건축 양식

 

 

 

 

 

 

 

거대한 돌들을 끼워 맞춰놓은 탑

이 탑들은 4면으로 조각되어있는데 원래는 54개가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파괴되고 지금은37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 형태나 미소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

 

 

 

54개의 석탑

석상의 얼굴은 216개로 그중 자야바르만 2세의 얼굴이 가장

보존상태가 우수하다고 한다.

앙코르의 미소

한국의 관세음 보살이라고도 합니다.

이 얼굴은 바이욘 사원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 .

앞에서 손을잡고 사진을 찍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