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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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등에 나타나고 있다..

1980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 이 곳이 월지(月池)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신라 왕궁인 반월성(半月城)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며,

 임해전의 이름도 본디 월지궁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자 조선의 묵객들이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삼국사기》에 동궁을 임해전(臨海殿),

즉 바다에 면한 건물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여기에서 안압지는 바다를 상징한다.

 

임해전지는 사적 제18호로서 면적은 7만 141.5평방미터,

 雁鴨池 서쪽 부근으로 추정되며 안압지와 임해전 조성은

文武王이 삼국통일을 기념하여 완성한 사업이다.

삼국사기의 임해전에 관한 기록을 보면

697년 9월에 孝昭王이, 769년 3월에 惠恭王이,

860년 9월에 憲安王이 임해전에 군신을 모아 큰 잔치를 하였고

931년 敬順王은 고려 태조 王建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를 보면 임해전은 政事를 보는 궁이 아니고

잔치나 나라의 손님들을 모시는 기능을 담당하였으며

그 시기는 대개 3월 또는 9월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임해전과 안압지의 경치가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다.

이 안압지와 임해전의 유적은 1974~1976년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결과 임해전의 궁전터가 밝혀졌는데

남북 일직선상에 중문, 정전, 내전이 배치되었고

중문에서 내전 후면까지 회랑으로 둘러져 있으며

안압지 서쪽 못가에 5개의 누각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건물 추녀 끝에는 물이 흐르던 石溝가 설치되어 있으며

회랑 바닥은 벽돌이 깔려 있다.

안압지는 이 동궁에 붙은 정원의 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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