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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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배롱나무명소 고려동 유적지..

 

유적지 보다는 배롱나무로 더 이름난곳이기도 하다.

 

 

 

절개와 지조를 목숨처럼 강조했던 옛 시절에는 忠臣不事二君이요 烈女不更二夫라 하여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며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 하였다. 

이 말은 사람이라면 절개를 지킬 줄 알아야 훌륭한 인격자로 존중된다는 뜻이다.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



 이오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그는 아들에게도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신주를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그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자미단, 고려전답 3,000여평, 자미정, 율간정, 복정들이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 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있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건물안에는 아담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정원에 꽃들이 반긴다.

 

 

 

 

 

 

 

 

 

한옥과 돌담과 배롱꽃이 주는 이름다운명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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